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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지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MANUFACTURING KNOWLEDGE

제조 현장에는 늘 자기 일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복 작업이 많으면 엑셀 매크로를 만들고, 코딩에 익숙한 사람은 Python이나 작은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썼습니다. 요즘은 그 자리에 AI가 들어오고 있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자기 문제를 직접 풀기 때문에 효과도 빠릅니다. 몇 시간 걸리던 일이 몇 분으로 줄기도 하고, 매번 손으로 확인하던 일을 자동으로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구가 팀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만든 사람이 떠난 뒤에야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묵지는 코드 안으로 옮겨져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사람이 떠나도 엑셀 파일과 코드는 남습니다. 계산식도 있고 threshold도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왜 그 값을 썼는지, 어떤 상황에서는 예외를 뒀는지, 당시 무엇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는지까지 함께 남아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른 사람이 코드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 판단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개인의 자동화가 그대로 조직의 지식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 머릿속에 있던 암묵지를 없앤 셈이 아니라, 개인이 만든 소프트웨어 안으로 옮겨놓은 셈입니다. 당장의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만든 사람 없이도 이해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조직 안에 남는 지식이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더 생깁니다. 제조 지식은 한 번 정리해두면 계속 같은 방식으로 쓸 수 있는 정보가 아닙니다. 몇 년 전에 맞았던 판단이 지금도 맞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장비 상태가 달라지고 소재와 제품이 바뀌며, 공정 조건이나 계측 방식도 계속 변합니다. 겉으로 비슷한 현상이라도 그때와 지금의 원인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지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반대로 낡았다고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그 판단이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 보고 지금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한 뒤, 쓸 수 있는 부분은 가져오고 바꿔야 할 부분은 다시 판단해야 합니다.

과거 경험을 다시 쓰려면 맥락이 필요합니다

특정 공정에서 보정값을 바꿨다는 결과만 남기면 다음 사람에게는 하나의 rule만 남습니다. 실제로 다시 써먹으려면 그때 어떤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는지, 장비 상태는 어땠는지, 데이터에서 어떤 변화가 보였는지, 그 판단 뒤에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까지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상황 → 판단 → 결과

숙련된 엔지니어는 원래 이런 식으로 경험을 씁니다.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과거의 답을 그대로 복사하기보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뭐가 다르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과거 경험의 가치는 답을 기억하는 데만 있지 않고, 지금 상황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맥락이 남아 있을 때 커집니다.

장비와 제품, 공정이 많아지면 이 비교를 사람 머릿속에서 계속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예전에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지 찾고, 당시 조건과 지금 조건을 맞춰보고, 어떤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줬는지 다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이 많을수록 참고할 사례도 늘어나니 오히려 기억만으로 처리하기는 더 벅차집니다.

AI가 할 수 있는 일도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오래된 지식을 검색해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과거의 판단이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 찾아 현재 데이터와 비교하고, 달라진 부분을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최종 판단은 사람이나 기존의 분석 로직이 맡더라도, 사람이 머릿속에서 해오던 비교의 범위를 훨씬 넓힐 수 있습니다.

지식을 남긴다는 것

제조업에서 암묵지를 디지털화하는 일은 분명 중요합니다. 다만 기록 자체가 목적이 되면 결국 오래된 매뉴얼이나 주인 없는 코드가 하나 더 생길 수 있습니다. 누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지금도 유효한지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저장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그 지식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REFERENCE

제조·엔지니어링 현장의 AI 도입을 다룬 MIT Initiative for New Manufacturing 지원 연구에서도 숙련자의 지식이 개인에게 남아 있는 문제와, 한 번 포착한 지식이 소재와 제조 방식의 변화에 따라 오래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Agentic AI in Engineering and Manufacturing: Industry Perspectives on Utility, Adoption,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2026)